2009년 12월 13일 일요일

가난한 사랑 노래

가난한 사랑 노래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법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 보지만
집 뒤 감나무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 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서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 언제나 읽어도 콧등이 찡해지는 시 중에 신경림의 <가난한
사랑노래>가 있다. 언젠가 신경림 시인으로부터 이 시를 쓰게
된 사연을 들었다. 그가 길음동 산동네에 살 때였다고 한다.
집 근처에 자주 들르던 술집이 있었고, 거기서 한 가난한 젋은이
를 알게 됐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많이 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처지를 못내 부끄러워하는 순박한 젊은이 였다.
어느 날 그 청년이 고민을 털어놨다. 바로 이 단골술집 딸과 사랑
하는 사이인데, 자신이 너무 가난해 결혼 애기를 꺼내기가 힘들
다는 것이었다. 하긴 딸을 가진 부모로서 빈곤한 노동자를 사위
로 맞아들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그 청년은 그집 딸과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기를 여러 번 해왔다고 말했다.
그 애기를 든은 신경림 시인은 청년에게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둘이 결혼을 하면 주례도 해주고 결혼 축시도 써주겠노라고 약속
을 했다. 그 희망에 힘을 얻었는지 둘은 머지않아 결혼식을 올렸
다. 당시 결혼식장에서 시인이 그들을 위해서 읽어 준 축시가
바로 <너희 사랑>이다.


너희 사랑

낡은 교회 담벼락에 쓰여진
자잘한 낙서에서 너희 사랑은 싹텄다

흙바람 맵찬 골목과 불기 없는
자취방을 오가며 너희 사랑은 자랐다

가난이 싫다고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고
반병의 소주와 한 마리 노가리를 놓고
망설이고 헤어지기를 여러 번이었지만

뉘우치고 다짐하기 또 여러 밤이었지만
망설임과 헤매임 속에서 너희 사랑은
굳어졌다

새삶 찾아나서는
다짐 속에서 너희 사라은 깊어 졌다

돌팔매와 최루탄에 찬 마룻바닥과
푸른옷에 비틀대기도 했으나
소주집과 생맥주집을 오가며
다시 너희 사랑은 다져졌다

그리하여 이제 너희 사랑은
낡은 교회 담벼락에 쓰여진
낚서처럼 눈에 익은 너희 사랑은
단비가 되어 산동네를 적시는구나

혼풍이 되어 산동네를 누비는 구나
골목길 오가며 싹튼 너희 사랑은
새삶 찾아나서는 다짐 속에서
깊어지고 다져진 너희 사랑은


이렇게 애틋한 사랑의 결실이었음에도 그들의 결혼식은 어느 비좁고 허름한 지하실에서 이뤄졌다. 청년이 노동 운동으로 지명수배를 받아 쫒기는 신세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은밀한 결혼식에는 순박한 감동이 있었다. 축하객은 다 합쳐봐야 열댓 명 정도였지만 모두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축하를 보냈다.
그날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곧장 집으로 돌아온 시인은 두 사람이 겪은 마음고생과 인생의 쓰라림을 달래는 마음으로 시 한 편을 더 쓰게 되었다 그때 탄생한 시가 바로 <가난한 사랑 노래>다.

시인의 얘기처럼 가난이란 인생에서 큰 멍에지만, 가난하다고해서 사랑을 왜면하거나 꿈을 접을 수는 없다는 긍정성 또한 영원한 진실이다.
신경림 시인은 이 시에서 '가난하기에 오히려 더욱 더 치열하게 살아야만 한다'고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쉽게 좌절하지 않고 노력하는 젊은이들에게는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 젊은이들은 지금 중년에 접어들어 넉적하지 않지만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한다. 신경림 시인은 21세 때 <갈대>라는 시로 등단 한 이후, 자청해서 남을 위한 헌사를 붙인 시를 쓴 적은 없다고 했다. 이 두 편의 시는 그가 '이웃의 한 젋은이' 와 '누이'에게 주는 각별한 애정의 증표다
그렇다. 때로는 결핍이 충족을 완성한다.」

시 읽는 CEO 중에서...

댓글 없음:

댓글 쓰기

팔로어

프로필

평범한 모습 평범함을 즐기는 평범하게 사는 사람입니다.